어제 오늘 겪은 일이 참 황당하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해서 끄적여본다.



1.


하도 오랜만에 복학을 했더니, 국가장학금이란 제도가 생겨있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신청을 해보았다. 원래 가족증명서 제출이나, 부모님의 소득제공 동의 등이 있어야 한다고 해서 일단 가족증명서를 준비 했었는데, 추가 서류 등이 필요한 경우 안내가 있을 예정이라고 되어있었다. 그래서 간간히 국가장학금 홈페이지를 들어갔으나, 별다른 말이 없길래 그냥 신청 되는가보다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 갑자기 오후 3시쯤 국가장학금 관련 문자가 왔다. 가구원 정보 제공 동의가 오후 6시까지란다. 부모 둘 모두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이 동의는 공인인증서가 필요하다. 어머니는 인터넷뱅킹을 종종 이용하기 때문에 유효한 공인인증서가 있지만, 아버지는 몇 년 전에 인터넷 뱅킹을 신청은 했으나 한동안 사용을 하지 않아 공인인증서가 만료된 상태였다. 그래서 부랴부랴 아버지한테 연락을 했지만 일 하시느라 당장 은행에 가실 시간이 없다고 하여(은행 업무가 4시까지다) 그냥 포기 상태로 있었다.


뭐 여기까지는 안내가 제대로 되지 않다가 이렇게 급하게 안내 문자가 온 것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지만, 제대로 확인을 하지 못한 내 잘못이라고 치자...



2.


그런데 오늘 오전에 다시 문자가 왔다. 가구원 동의 일정이 금요일까지 연장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아버지한테 연락을 해서, 은행에 가서 공인인증서에 필요한 것들(보안카드 잃어버리셨다고 해서 보안카드도 재발급 받는 등)을 달라고 전달드렸다. 그리고 오늘 저녁에 집에 도착해보니 보안카드를 재발급 받아 오셨다. 은행에서는 보안카드를 재발급 해줄테니 이걸로 공인인증서를 발급받으면 된다고 했다고 한다.


아무튼 그래서 보안카드를 가지고 모 은행 사이트에 들어가 공인인증서 발급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그런데 ID/PW 로그인을 하라는 것이 아닌가! 아버지한테 ID/PW 뭔지 기억나냐고 여쭤봤지만 당연히 잊어버린 상태였고, 그나마 과거 사용하던 ID/PW들을 모두 입력해 보았으나 일치하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히 아이디 찾기 기능이 있길래 눌러봤더니, 계좌번호와 계좌비밀번호, 주민번호 앞자리를 입력하란다. 그래서 입력했더니 이번에는 본인인증을 해야한단다. 그런데 이 본인인증 방법이 딱 2가지이다. 하나는 공인인증서로 인증, 하나는 SMS인증... 공인인증서로 인증이 될리 만무해, SMS 인증을 시도했으나 이마저도 실패했다. 아버지 휴대폰이 어머니 명의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이게 대체 뭐란말인가?



3.


물론 아버지가 IT나 이런 복잡한 절차에 익숙치 않아 은행 직원의 안내나 문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셨을 수 있다. 그리고 애초에 미리미리 준비하지 못한 내 잘못도 있다. 하지만 이런 복잡하면서도 친절하지 않은 시스템들에 정말 회의를 느낀다. 


본인 인증을 주민등록번호로 하라고 하다가 여러 곳에서 주민등록번호가 털리자 아이핀을 이용하라고 하고, 아이핀을 기껏 이용했더니 아이핀도 털리고, 남은건 휴대폰밖에 없는데 휴대폰은 또 본인명의 외 다른 가족 명의로 등록할 수 있게 해뒀고...


총체적 난국이라는 말 밖에 떠오르지 않는 날이다.


최근 도모노 노리노의 '행동경제학' 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이 책의 부제는 '경제를 움직이는 인간 심리의 모든 것' 이다. 책의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행동경제학은 기존의 경제학에 심리학을 더한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초중고 시절부터 나는 심리학에 매우 관심이 많아, 실제 관련 도서도 많이 읽었고 대학에 와서도 개론이긴 하지만 심리학 수업도 들은 적이 있다. 좀 더 깊게 공부해부면 어떨까 해서 복수전공/부전공을 신청해볼까 했지만 학점의 한계로 실패..


아직 이 책의 서론에서 갓 넘어간 정도 부분을 읽고 있긴 하지만, 재밌는 내용들이 많이 나온다. 죄수의 딜레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이 합리적인 결정을 할 때 사용하는 휴리스틱이나 이에 따른 바이아스 등에 대한 내용이다. 그런데 이런 책을 읽다보면 내 머리가 좋지 않음이 매우 답답해진다. 


행동경제학이라는 책이 그렇게 어려운 책은 아님에도, 각종 이론이나 예시를 이해하려면 뭔가 예상만큼 머릿속에서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마치 축구를 오랜만에 할 때, 내가 실제 달리는 속도가 내 예상보다 느려서 상체가 앞으로 쏠리는 느낌과 비슷한 느낌을 머릿속에서 받으며, 자바 힙스페이스 오류가 나듯이 꼬여버린다. 차근차근 읽으며 정리해보면 대부분 이해는 되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내 머리가 받아들이는, 이해하는 속도가 느리면 정말 답답하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읽은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 에서도 교육이나 인간의 발달 부분에 대해 간단히 다루는데, 인간의 인지적 능력과 비인지적 능력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인간의 비인지적 능력은 후천적으로 발달시키기가 불가능하거나 매우 힘들다고 하는데, 머리가 돌아가는 속도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 외에도 최근 읽은 책들, 그리고 기사들을 보면 인간의 선천적 능력, 즉 재능이 노력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얘기를 많이 접한다. 예전에는 이런 얘기를 들었을 때, 노력은 모든 것을 극복하게 할 수 있다는 주의였는데, 요새는 꼭 그렇지는 않을 수도 있겠구나 싶다. 물론 재능이 부족한 사람이 재능이 있는 사람보다 훨씬 더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는 경우도 많이 있겠지만, 현실에는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노력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어떤 일에 재능이 있다 -> 일에 흥미를 느낀다 -> 더 열정을 가지고 일을 하게 된다' 의 양성 피드백이 일어날 수 있으니...


뭐 아무리 이렇게 생각해도 선천적 재능을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최대한 노력하는 것 뿐이다. 재능에 대해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오는 결론은 똑같다. 재능과 노력에 대한 이론들이 사실이건 아니건, 재능에 대한 한계를 느꼈을 때 절망감에 빠지느냐, 혹은 이를 받아들이고 극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느냐는 그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것 같다. 또 생각해보면 그런 상황에서 극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마음가짐 자체도 재능인 것 같기도 하지만 어쨌든 결론은 내가 재미있어 하는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하자! 



내 외모가 만만하게 보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학교 교정이나 길을 걷다 보면 전도를 하려고 다가오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 팜플렛을 손에 쥐어주며 한 번 읽어보라고 권유하는 얌전한 분들도 있고, 다짜고짜 교회 다니냐고 물어보는 분들도 있고, 심지어 처음에는 길을 묻기 시작하더니 계속해서 대화를 이끌어가며 종교 얘기를 하는 분들도 있다.


나도 초등학교 때 잠깐, 중고등학교 때 잠깐, 대학교 때 잠깐씩 교회를 다니긴 했었다. 중학교 때는 친구 따라서 성당을 다니기도 했으며, 훈련소에 가서는 불교/천주교/기독교를 한 주식 번갈아가며 가기도 했다. 하지만 교회나 성당을 다니며, 내가 왜 이 신을 혹은 종교를 믿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만 남았고, 지금은 무교인 상태로 지내고 있다.


'무교' 라고 하면 천벌을 받거나 지옥에 갈 것 같이 핏대를 세우는 종교인들이 가끔 있는데, 무교는 '무신론' 이랑은 엄연히 다르다. 나는 신이 절대 없다고 믿는 것은 아니며, 단지 왜 신을 믿어야 하는지를 모르겠어서 무교인 것이다.


보통 교회를 가면 찬송가를 부르고, 목사님이나 전도사님의 말씀을 듣는다. 그리고 기도를 하고, 다시 찬송가를 부르다가 마무리 기도를 하며 예배가 마무리 된다. 그런데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 신이 있는지 혹은 왜 믿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신을 찬송하는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이건 마치 북한의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을 찬양하라고 교육받는 것과 다를 것이 무언가 싶었다. 그래도 목사님/전도사님 말씀의 경우 성경을 토대로 좋은 말씀을 해주시기 때문에, 마치 책을 읽고 교훈을 얻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기도도 찬송가와 마찬가지... 도대체 나는 어떤 신에게 무엇을 고백하고 바라야 한다는 말인가?


교회에도 나름대로 교육 시스템이 있어서 참여한다면 성경에 대한 내용, 그리고 내가 궁금해하던 왜 신을 믿어야 하는가, 왜 신이 존재하는가에 대해 배울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교회를 다녀본 결과 이러한 교육은 예배 시스템의 핵심이 아니라, 매우 부수적인 활동이다. 


그런데 남을 설득하는 과정에서는 왜 이것이 맞는 지/틀린 지, 그리고 이에 따른 결과는 어떤 것인지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아니, 이 외의 것들은 사실 설득에서 중요한 요소가 전혀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막상 종교인들은 전도를 하며 왜 신을 믿어야 하는지, 왜 신이 존재하는 지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은 채 단순히 믿으라고만 강요하거나 권유한다.


앞서 말했지만 종교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엄청 과학적인 사람이라 반드시 과학적 근거가 있어야 종교를 믿게 될 것이라고 생각지도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 사람의 신념을 강하게 파고들기 위해서는 설득의 최소 요건 정도는 갖추었으면 좋겠다. 언론에 나오는, 그리고 주변에 보이는 종교인들을 보면 실상 이러한 이유를 본인도 알지 못한 채 맹목적으로 믿거나 믿는 척 하는 사람들이 많아 보이긴 하지만... 이러한 사람들을 논외로 하더라도 말이다.

올해 초여름부터 더치콩나무 라는 곳에서 커피를 주문해서 마시고 있다. 일단은 회사에서 있는 시간이 제일 길기 때문에, 회사 냉장고에 넣어두고 하루에 한두잔씩 마시고 있다. 집에서 혹은 회사에 사다 놓고, 하루에 한두잔씩 마시기에 정말 좋은 것 같다.



나는 커피를 잘 알지 못하고 그렇게 빠져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을 하다가 피곤하거나 목마를 때, 혹은 간식을 먹을 때 마시면 정말 꿀맛이다. 


그리고 주변 카페에서 하루이틀에 한 잔씩만 사서 마셔도 요새는 싼 곳을 찾아도 한 잔에 최소 2500원씩은 하기 때문에 가격이 은근히 부담이 된다. 더치콩나무는 처음에 살 땐 비싸게 느껴지지만, 마시다 보면 결국 가격 측면에서는 오히려 더 나은 것 같다.


일주일에 3잔의 커피를 사마셨다고 생각하면, 1주일에 약 7500원이고, 더치커피 500ML짜리 1병이면 대략 2주 이상은 먹는데(커피 원액이기 때문에 보통 물에 타서 마신다), 500ML 1병이 6,900원이고 4병씩 사면 1병에 6,000원 꼴이니 가격 면에서도 훨씬 좋은 대체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커피 맛을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 산 더치커피를 물에 타서 마시는 것이 동네에서 파는 웬만한 아메리카노보다는 맛잇다. 여름에는 얼음도 넣어서 시원하게 마시면 정말 좋고, 겨울에는 찬물에 타서 마시더라도 어차피 밖에 가지고 나가는 것이 아니고 사무실에서 마시게 되니 크게 지장은 없다.


종류는 12개 정도 있는데, 지금까지 미라지 블루, 수프리모, 케냐AA 3종류를 마셔보았다. 개인적으로 여름에는 케냐AA가 괜찮은 것 같고(얼음을 넣어 마시기에), 수프리모보다는 미라지 블루가 나은 것 같다. 하지만 3종류 모두 나에게는 크게 다르진 않고, 다 맛있었다.



안 마시던 커피를 갑자기 사려는 사람들 한테는 비추지만, 일주일에 2~3잔 이상은 카페에서 사서 마시거나 '나는 커피를 좀 마실 줄 안다' 하는 사람들한테는 강추하고 싶다.



더치콩나무 홈페이지 : http://www.kongnamoo.co.kr/


요즘 The One Thing 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이 책의 중간에 '의지력' 이라는 말이 나온다. 의지력이란 말 그대로 의지를 가지고 무언가를 하기 위한 힘인데, 사람의 의지력은 한계가 있고 이는 좀 쉬고 나면 충전이 되는 개념으로 나온다. 평소에 나는 이것을 '집중력' 이라는 단어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예를 들자면 아침부터 공부를 하다가 저녁 즈음에 '아 오늘 집중력 다 떨어졌어, 좀 쉬어야겠다' 라고 쓰일 수 있겠다. 



아무튼 이런 '의지력'을 특별히 많이 필요로 하는 일들이 있는데, 대개 머리를 많이 써야 하는 일이거나, 자기가 좋아하고 흥미를 가지지 않은 일이거나, 평소에 하지 않던 일들이라고 한다. 특히 흔한 자기계발 도서에 '자기관리' 라고 하는 것을 보면 자신을 철저하기 통제하고 관리하게 되는데, 이 책에 따르면 이렇게 자신을 통제하고 관리하면 '의지력' 이 떨어져서 결국 반드시 집중해서 해야할 일에 의지력을 쏟아붓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그렇다고 항상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만 하면서 살 순 없지 않은가? The One Thing에서는 이것을 '습관'으로 극복해야 한다고 한다. 평소에 하지 않던 일들을 하는 것에 의지력이 많이 필요하다면,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습관' 으로 만들면 된다는 것이다. 



평균적으로 사람이 습관 하나를 들이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66일 정도라고 한다. 물론 사람마다 편차는 다양할 수 있고, 어떤 습관이냐(습관의 난이도 등)에 따라 달라질 순 있겠다. 나에게 이를 적용한다면, 하나의 습관을 들이는 데에 약 2~3달씩 시간을 들이며 좋은 습관을 늘려갈 수 있을 것 같다. 


평소에 맨날 생각하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좋은 습관들은 아래와 같다.


-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되, 잘 때 깊이 자는 습관

- 적어도 1주일에 3회 이상 운동을 하는 습관

- 독서를 하는 습관



이 외에도 하고 싶은 것들이 정말 많지만 우선은 위 3개에 대해서 남은 2013년과 2014년 동안 습관을 들이려고 한다. 


사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 습관이 된다면 그 확보한 시간으로 나머지 2가지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지만, 가장 난이도가 높은 것이 아닐까 싶다. 원래는 한 번에 한가지씩 습관을 들이고자 했지만, 일단 출퇴근 길에 독서는 의도적으로 계속 습관을 들이고 있고, 운동도 등록해둔 헬스 외에 배드민턴을 치는 등 노력 중이다. 


가장 난관인 첫번째 미션을 위해 힘써봐야겠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우연히 이런 글을 보게 되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되기 쉬운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되기 힘든 사람은 바로 남들이 바라는 자기 자신이다.

그 누구도 당신을 좌지우지하게 하지 마라.


- 레오 부스칼리아 -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 어떤지 잊어버리거나 생각하지 못한 채로 지낼 때가 많은 것 같다.


그냥 쳇바퀴 돌듯이 습관적으로 살아갈 때도 많고, 무언가 변화하거나 시도하려고 할 때는 특히 내가 하고 싶어하는 것을 선택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바라는 모습을 위해서 하기도 한다.


물론 심리학이나 철학 쪽 서적을 보면 자아의 정체성을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는 이론들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얘기하는 것은, 무언가 선택을 하거나 결정을 할 때 과연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인지, 진정으로 '나'를 위한 것인지에 대해 좀 더 고민을 하는 것의 중요성이다. 


평소에는 이런 것을 느끼지 못하지만, 무언가 선택의 갈림길에 섰을 때 내가 얼마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다른 사람들의 조언을 받아들이는 것까지는 좋지만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살아가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설령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며 내린 결정이 더 좋은 결정이었다 하더라도, 최소한 내가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후회는 덜 남지 않겠는가?

오랜만에 남산에 다녀왔다.


남산은 종종 가지만, 갈 때마다 뭔가 뻔하면서도 새로운 맛이 있다.



최근 캐논 EOS 100d를 진지하게 고민 중인데 가격이 너무 부담스러워서,이번에 새로 온 아이폰5s가 DSLR을 대체할 수 있을지 테스트 해볼 겸 가을 남산 사진을 몇 장 찍어봤다.


DSLR을 사며 장비부심을 부리기 보다는, 일단 아이폰 카메라로 연습을 많이 해봐야지...


가을이랑 상관없는 사진이 많은 건 함정





흑백으로 찍어봤는데, 느낌있는 사진을 찍을 때 좋을 것 같다.




먹기 좋게 생긴 열매



서울에서 가장 높다는 N서울타워




아웃포커싱 연습




에펠탑 못지 않음 ㄷㄷ




아웃포커싱 연습2




작은 벤처 회사 두 곳을 다니며, 그리고 직장 생활을 하는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일을 지시(혹은 부탁)하는 타입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


내가 느끼는 이 두가지 타입에 이름을 붙여보자면, '선생님' 타입과 '방생형' 타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선생님' 타입의 경우 하나의 일을 지시할 때,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갈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은 정보와 제약 조건을 함께 제시한다. 어떻게 일을 처리해야 하며, 어떤 결과물이 나와야 하는지 등등 디테일의 수준은 경우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비교적 자세히 전달한다. 


'방생형' 타입의 경우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 지만 전달하고, 구체적인 방법이나 수단에 대하여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농장에서 주인이 직원에게 사과나무에서 사과를 따라는 지시를 한다고 해보자.


농장 주인이 '선생님' 타입일 경우

'오늘, 내일 중으로 여기에 있는 사과나무에서 사과를 전부 따도록 하세요. 낮은 곳에 있는 사과는 그냥 손을 뻗어서 따면 되고, 높은 곳에 있는 사과는 저기에 준비해 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따면 돼요. 사과를 딸 때 썩은 부분이 2cm 이상이면 따로 분리해서 바구니에 담아두세요. 그리고 그렇지 않은 사과는 50개씩 한 바구니에 담아서, 창고에 넣어두세요'


농장 주인이 '방생형' 타입일 경우

'오늘, 내일 중으로 여기에 있는 사과나무에서 사과를 전부 따도록 하세요. 사과는 시장에 내다 팔테니, 많이 안 썩었고 괜찮은 걸로만 잘 챙겨둬요'


이 정도로 비유를 할 수 있을까?



여기서 어떤 타입의 지시가 좋은 것인지는 상황에 따라서도 다르고 지시를 받는 사람에 따라서도 다르고, 그 일을 지시하는 사람이 몸담고 있는 조직이 어떤 환경인가에 따라서도 다를 수 있다. 이 두가지 타입의 장점을 생각해보면 아래와 같은 것 같다.


'선생님' 타입의 장점

- 실제 실무자의 시행착오를 줄여준다.

- 실무자가 고민할 여지를 남겨두지 않아, 스트레스를 줄여준다.

- 지시자가 원하는 output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방생형' 타입의 장점

- 실무자의 능력, 경험을 키워준다.

- 실무자의 자율에 맡김으로써 더 창의적인 output이 나오기도 한다.

- 지시자의 업무 로드를 줄일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해당 조직의 환경에 따라, 그리고 개인의 성향에 따라 어떤 타입의 지시가 더 좋은지는 다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위 2가지의 장점을 적절히 섞는 형태가 가장 이상적이지 않나 싶다.


실무자에게 최대한의 자율을 주어주되, 선행자가 겪은 시행착오에 대한 내용을 설명하거나 데이터를 전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실무자가 왜 이 작업을 해야하는지, 그 작업의 목표에 대해서 명확히 설명한다. 또한 output의 포맷을 알려주기 보다는 그 output이 나와서 어디에 사용되는지를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output이 나오게 되면 이에 대한 건전한 토론을 하되, 비판을 하지 않도록 한다.


적고 보니 너무 당연한 말들이긴 하지만, 실제로 일을 지시하거나 지시 받을 때 이런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나중에 일을 지시할 입장이 되었을 때 위에 적은 대로 잘 실천할 수 있을까?



페이스북에서 돌아다니는 걸 보고 복사해뒀었는데, 당연하지만 지키면 좋은 것들이라 다시 정리해본다.

(원래 출처가 어딘지 정확히 몰라서... 양해 바랍니다.)


<하루 24시간을 2배로 사는 20가지 지혜>


1. 그 날의 기분을 중요시한다.

2. 아침 일찍 일어난다.

3. 자는 시간에 관계없이 일어나는 시간을 일정하게 맞춘다.

4. 아침 일찍 일어나기 힘들다면 차 한 잔 마시는 습관으로 시작한다.

5. 일어나서 맨 처음 할 일은 찬물로 세수를 하는 것이다.

6. 허둥대는 아침이 아닌 5분의 명상으로 아침을 시작한다.

7. 다음 날의 계획은 전날 밤에 세워둔다.

8. 다음 날 입을 옷은 미리 챙겨둔다.

9. 자정 전에 무조건 잘 수 있도록 노력한다.

10. 머리를 베개에 묻는 순간 모든 것을 잊어라.

11. 잠 안 오는 밤에 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독서다.

12. 일에 있어서나 사람에 있어서나 범위를 좁혀 선별하되, 정해진 것에 집중 투자한다.

13. 10분의 낮잠은 밤잠 한 시간의 차이가 있다.

14. 필요한 일과 필요치 않은 일을 구분한다.

15. 통근 시간이 매우 생산적인 시간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한다.

16. 여유 있는 계획을 세운다.

17. 모든 일에는 데드라인이 있다.

18.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19. 모든 계획은 시작 시간과 끝 시간을 명시한다.

20. 항상 최상의 선택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선택과 집중이란건 정말 좋은 단어지만, 가끔 '포기'라는 개념을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로 포장할 때가 있다. 



가장 좋은 예로 고등학생들이 '난 수학을 못하니까 국어영어에 집중해서 좋은 결과를 얻어야지' 라고 하는 경우,


실제로 수학을 안 하는만큼 국어영어에 집중해서 좋은 결과를 얻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런건 '선택과 집중'이 아니라 '포기'이다.



물론 선택을 할 때 선택하지 못한 것들은 자연스레 포기하게 된다.


그 선택 이후의 시점에서 자신이 선택한 것을 더 집중하게 된다면 '선택과 집중' 이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단순한 나태함일 뿐이니 이게 여기서 말하는 '포기'의 개념...



나도 살아가면서 알게모르게 '선택과 집중'을 한답시고 '포기'를 하고 있는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