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과 영상이라는 교양 수업의 과제로 작성한 리뷰로, 소설 더 리더와 영화 더 리더의 비교 감상문이다.



  3년 전인가, <더리더>의 초반부 20분 정도를 보다가 끝까지 보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더리더> 초반부에는 꽤 파격적인 정사 장면이 나오는데, 그 부분만 보고는 단순히 격정 로맨스 영화인 줄 알았던 것이다. 영화 포스터의 이미지나 각종 포탈 사이트에 소개된 줄거리를 보았던 것이 이런 오해를 야기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영화 <더리더>와 소설 『더리더』를 보고, 왜 이런 작품을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나 싶었다.


  ‘더리더’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독일의 전후 세대 갈등과 이에 대한 해결의 과정을 특정 인물들을 통해 표현하는 작품’이다. 실제로 <더리더>와 『더리더』 모두 15세 소년 마이클과 30대 중반의 여성 한나의 사랑을 시작으로 해서, 한나의 영향을 받은 마이클의 인생, 한나의 재판, 재판 후 마이클과 한나의 관계 그리고 한나의 자살이 서사의 뼈대를 이룬다.  그러나 그 속에 담겨진 의미는 전혀 다른 것이라 할 수 있다. <더리더>와『더리더』에서 각각 표현하는 방식이나 세부적인 설정 등은 조금씩 다른 면이 있지만, 이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숨겨진 의도는 거의 동일한 것으로 보인다.


  소설과 영화를 보며 공통적으로 느낀 주요 부분들을 언급해본다. 우선 마이클과 한나의 사랑은 이 작품의 서사를 이루고자 하는 장치일 뿐, 위에서 언급한 ‘전후 세대 갈등과 해결 과정’에 있어서는 중요한 요소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다만 어린 마이클이 바라보는 한나의 모습은, 전쟁 당시 ‘가해자’ 를 단순히 악으로 간주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든다. 도입부에서 마이클을 도와주는 모습이나 재판 과정에서 드러나는 한나의 선행(?) 그리고 순진함들은 가해자가 정말 순수 악은 아닐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리고 소설/영화의 마이클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독자/관객의 입장에서, 가해자가 내가 한 때 사랑했고 나에게 큰 영향을 준 사람이라는 사실은 객관적인 판단을 더욱 흐리게 한다.


  재판 과정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한나가 ‘재판관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라고 묻는 장면이다. 그 질문은 한나가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는 것이라기보단 진짜 몰라서,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겠어서 하는 질문으로 보인다. 심지어는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깊이 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죄를 저지른 후 ‘몰라서 그랬어요’ 라고 하는 것을 합리화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당연히 잘못된 것이지만, 한나가 지금까지 보여줬던 모습들이 이에 대한 판단을 단호하지 못하게 한다. 글을 읽지 못하는 문맹이며, 이를 극복하려 노력하기보단 숨기기에 급급하고, 이의 영향인지 다소 합리적이지 못한 사고를 하는 한나의 모습들이 바로 그것이다.


  재판 이후 마이클이 한나를 찾아갔을 때 한나의 말, ‘내 느낌은 중요하지 않아. 내 생각이 어떤지도 중요하지 않아.’도 꽤나 인상적이다. 이는 지금까지 마이클의 시각에서, 즉 좀 더 가해자의 입장에 치우친 시각에서 가해자의 죄를 단호히 판단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반론이라고 생각된다.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가해자가 무지하건 말건 결국 피해자가 받은 피해와 충격에 대해서 가해자가 죗값을 치뤄야 한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인 것이다. 지금까지 ‘문맹’을 통해 가해자의 무지를 강조했다면, 이 말은 글을 배운 한나가 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지를 벗어난’ 상태의 가해자의 생각이다. 한편 이를 뒤집어 생각하면, 당시에는 무지로 인해 죄를 저지른 가해자도, 무지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판단하고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일종의 면죄부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는 소설과 영화에서 조금씩 다르게 표현됐거나, 한 장르에서만 표현된 것들 중 ‘숨겨진 의도’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정리해본다. 『더리더』에서 마이클이 재판 과정에서 이렇게 생각하는 구절이 있다. ‘몇 주 동안 계속된 재판 내내 나는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나의 감각은 마비된 것 같았다. …(중략)… 잠시 후 나는 나와 비슷한 마비 증세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는 전쟁의 직접적인 영향권에서 벗어난, 그리고 벗어나고 있는 사람들의 무관심함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 무관심이란 ‘무지’에 대한 것이 아니라, 당시의 가해자(악)와 피해자의 아픔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무관심이다. 한나의 세대가 전쟁을 직접 겪은 1세대라면, 마이클의 세대는 이의 영향권에 살짝만 걸쳐있는 2세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2세대들의 무관심을 이런 감정 묘사를 통해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더리더』에서는 한나가 떠나기 직전 마이클이 수영장에서 한나를 외면하고, 본인은 이를 ‘배반’이라고 생각하며 죄책감을 가진다. 그리고 재판 과정에서 많은 번뇌를 하며 ‘범죄자를 배반하는 것이 죄가 되지 않으므로 내가 유죄가 아니라고 해도, 나는 범죄자를 사랑한 까닭에 유죄였다’라고 한다. 그리고 마이클은 본인의 아버지에게 찾아가 조언을 구하는데, 아버지가 이런 말을 한다. ‘하지만 어른들의 경우에는 내가 그들에게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들 스스로가 좋다고 여기는 것보다 우위에 두려고 하면 절대 안 돼.’ 이렇듯『더리더』에는 철학적인 물음들이나 명제들이 자주 나온다. 반면 <더리더>는『더리더』에 나온 철학적인 이슈들을 인물들의 표정이나 행동을 통해서 드러낸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논리적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문제를 받아들이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부분을 영화가 잘 살렸다고 본다. 대중에게 이런 민감하면서 어려운 문제를 던져주는데 있어 너무 논리적으로, 철학적으로 다가가기보다는  감정적으로, 직관적으로 와닿게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도『더리더』의 해당 부분을 보며 생각의 갈피를 잡지 못했는데, <더리더>를 보고 나서는 조금 더 명확한 감정을 갖게 되었다.


  마지막으로『더리더』와 <더리더>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마이클의 ‘딸’의 역할과 각 장르에서 서사의 마무리이다. 『더리더』에서는 마이클이 글을 집필함으로써, <더리더>에서는 마이클이 자신의 딸에게 과거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을 암시함으로써 마무리된다. 이 두 가지의 방식이 분량 상으로는 상당히 짧지만, 시사하는 바는 꽤 크다. 『더리더』에서 마이클이 글을 집필하는 것은 과거를 차곡차곡 정리한다는 의미가 강하고, <더리더>에서 마이클이 딸에게 과거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은 다음 세대에게 이를 이어준다는 의미가 강한 것이다. 사실 전쟁 당시 가해자들의 죗값을 묻는 것과,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 모두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이다. 마이클이 수용소(정확히 말하면 죽음의 행군 중 묵게 된 교회)에 갇혀있다가 탈출한 모녀 중 딸을 만나는 장면에서 이런 면이 여실히 들어난다. 이런 상황 속에서 과거 일들을 곱씹으며 글을 집필하는 것은, 무감각해진 사람들이 다시금 이런 이슈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설득하는 것 같다. 반면 딸에게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이 과거를 털어놓는 것은, 다음 세대에게도 이러한 과제를 넘겨주는 동시에, 다음 세대와의 갈등을 해소하는 듯한 모습으로 보인다. 


  여기서 이 딸의 역할이 소설과 영화에서 각각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더리더』에서도 물론 딸의 권리를 빼앗는 것 같아 미안해하는 마이클의 내면이 표현되지만, <더리더>에서는 실제 딸과 소통하려 노력하지만 과거의 짐 때문에 완전히 소통되지 않는 느낌을 자아낸다. 그러나 마이클의 개인적인 과거사 청산, 즉 마음의 정리가 어느 정도 됨으로써 다음 세대와의 화해를 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더리더』와 <더리더>에서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느낌과, 각 장르에서 다르게 표현된 부분들 중 특정 의도와 관련된 부분들을 살펴보았다. 이런 점들을 보았을 때, ‘전후 세대 갈등과 죄의 처벌’ 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측면에서,  <더리더>가 좀 더 직관적이면서도 미래 지향적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더리더』에서만 느끼고 고민할 수 있는 철학적인 이슈들이 있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더 많은 대중에게 더 직관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더리더>를『더리더』보다 더 높게 평가해본다.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저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출판사
이레 | 2009-01-29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책 읽어주기, 샤워, 사랑 나누기, 그리고 나란히 누워 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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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2009)

The Reader 
8.6
감독
스티븐 달드리
출연
케이트 윈슬렛, 데이빗 크로스, 랄프 파인즈, 레나 올린, 브루노 간츠
정보
로맨스/멜로, 드라마 | 미국, 독일 | 123 분 | 2009-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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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뷰는 이번 학기에 듣고 있는 '문학과 영상'이라는 수업의 과제로 작성한 리뷰로, 포스트 제목은 '박범신 - 은교' 이지만 실제로는 소설 은교와 영화 은교(정지영 감독)를 모두 보고 비교하여 작성한 글이다.



  다른 매체의 작품이 영화로 각색된 작품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소설이 각색된 작품들은 물론 만화가 각색된 작품들도 꽤 많이 보았다. 그런데 볼 때마다 ‘각색된 영화는 원작을 먼저 보고 봤을 때 항상 재미 없다’고 느꼈다. 그저 영화의 런타임이 짧으니 어쩔 수 없나보다 했는데, 문학과 영상 수업에서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나의 잘못된 판단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각색’은 원작을 최대한 유사하게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원작을 참고로 하여 재창조 하는 것이었다.


  은교의 경우 역시 소설을 먼저 보고 영화를 보았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계속 소설의 내용이 머릿 속에서 둥둥 떠다녔다. ‘이 부분은 생략이 됐네, 이 부분은 소설이랑 완전히 다르네, …’. 개인적으로는 소설의 많은 미묘한 부분들을 영화에서 다 담아내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각색은 원작의 모방이 아니라 ‘재창조’라는 측면에서, 소설과 영화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적어보며 각 장르가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추었는지에 대해 비교해보고자 한다.


  우선 공통점을 다뤄보자면 소설과 영화 모두 이적요, 서지우, 은교 세 명의 관계가 주된 서사를 이룬다는 것이 뼈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두 매체 모두 단순히 삼각관계라고 표현하기엔  사랑 외적인 여러 요소들이 개입되어있다. 또한 은교를 향한 이적요의 순수하면서도 욕망적인 사랑, 그리고 나이 앞에서 절망하다가 제자에 대해 분노를 참지 못해 결국 살의를 가지게 되는 이적요의 모습, 그리고 몇몇 대사와 상황들이 소설과 영화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다.


  차이점으로 첫번째는, 소설에서는 이적요와 서지우의 관계가 좀 더 심도있게 다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소설에서 이적요가 무한한 분노를 느끼지만 살의를 느낀 이후에도 마지막까지 서지우에게 눈빛을 보내는 장면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소설에서 서지우는 굉장히 입체적인 인물로, 많은 복합적인 감정들이 묘사된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이러한 서지우의 모습, 그리고 이적요와 서지우의 관계가 상대적으로 단순화되어 나온 것 같다.


  두번째로 소설에서 한은교는 굉장히 순수하면서도 신비롭게 비춰지고 있어 의뭉스럽기까지 하지만, 영화에서는 은교의 마음이 좀 더 드러나있다. 그리고 이런 면이 오히려 여주인공을 더 수동적인 모습으로 보이게 한다. 소설에서는 은교의 내면을 거의 다루지 않았는데, 일부러 신비화 시킨다기보다는 사실 은교의 마음이나 행위에 대한 동기 보다는 이적요와 서지우의 내면, 관계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세번째로 ‘젊음과 늙음’에 대한 인식의 정도의 차이이다. 물론 영화에서도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이,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는 벌이 아니다’ 라고 하는 대사라든지, 서지우가 이적요를 노인이라고 몰아붙이는 장면 등이 나온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는 이적요가 은교를 사랑하는 것이 ‘여인’에 대한 사랑이라기보단 ‘젊음’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늙음에 대한 이적요의 내면들이 많이 묘사된다. 


  마지막으로 가장 크게 느낀 차이는 바로 ‘관음’이다. 소설에서는 이적요의 내면이 워낙 잘 드러나있다보니, 은교를 바라보는 모습이 관음으로 보이지 않았다. 비록 나이 차이를 보았을 때 정상인의 사랑의 범주를 벗어나긴 하지만, 마치 좋아하는 사람을 몰래 힐끗힐끗 쳐다보는 정도의 일반적인 사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이적요가 은교를 몰래 바라보고, 그리고 또 자신이 바라는 자신과 은교의 관계를 상상하고… 이런 모습들이 상당히 관음적으로 보여졌다. 심지어 서지우와 은교의 정사를 지켜보며 이적요는 굉장히 가슴아파하고 분노하지만, 그럼에도 계속 바라보는 모습은 관음의 절정을 보여주는 장면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소설과 영화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간략히 적어보았다. 다만 소설의 여운이 너무 많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영화를 봐서 그런지, 영화를 원작과 별개로 독립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너무 부족했던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원작 소설과 각색된 영화를 보며, 히치콕이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단편 소설만 각색했던 이유를 알 것만 같다.



은교

저자
박범신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0-04-06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2010년 박범신의 신작 장편소설 [은교]'이 소설로 나는 내 ...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은교 (2012)

Eungyo 
7.1
감독
정지우
출연
박해일, 김무열, 김고은, 정만식, 박철현
정보
로맨스/멜로 | 한국 | 129 분 | 2012-04-25
다운로드 글쓴이 평점  


어제 오늘 겪은 일이 참 황당하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해서 끄적여본다.



1.


하도 오랜만에 복학을 했더니, 국가장학금이란 제도가 생겨있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신청을 해보았다. 원래 가족증명서 제출이나, 부모님의 소득제공 동의 등이 있어야 한다고 해서 일단 가족증명서를 준비 했었는데, 추가 서류 등이 필요한 경우 안내가 있을 예정이라고 되어있었다. 그래서 간간히 국가장학금 홈페이지를 들어갔으나, 별다른 말이 없길래 그냥 신청 되는가보다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 갑자기 오후 3시쯤 국가장학금 관련 문자가 왔다. 가구원 정보 제공 동의가 오후 6시까지란다. 부모 둘 모두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이 동의는 공인인증서가 필요하다. 어머니는 인터넷뱅킹을 종종 이용하기 때문에 유효한 공인인증서가 있지만, 아버지는 몇 년 전에 인터넷 뱅킹을 신청은 했으나 한동안 사용을 하지 않아 공인인증서가 만료된 상태였다. 그래서 부랴부랴 아버지한테 연락을 했지만 일 하시느라 당장 은행에 가실 시간이 없다고 하여(은행 업무가 4시까지다) 그냥 포기 상태로 있었다.


뭐 여기까지는 안내가 제대로 되지 않다가 이렇게 급하게 안내 문자가 온 것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지만, 제대로 확인을 하지 못한 내 잘못이라고 치자...



2.


그런데 오늘 오전에 다시 문자가 왔다. 가구원 동의 일정이 금요일까지 연장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아버지한테 연락을 해서, 은행에 가서 공인인증서에 필요한 것들(보안카드 잃어버리셨다고 해서 보안카드도 재발급 받는 등)을 달라고 전달드렸다. 그리고 오늘 저녁에 집에 도착해보니 보안카드를 재발급 받아 오셨다. 은행에서는 보안카드를 재발급 해줄테니 이걸로 공인인증서를 발급받으면 된다고 했다고 한다.


아무튼 그래서 보안카드를 가지고 모 은행 사이트에 들어가 공인인증서 발급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그런데 ID/PW 로그인을 하라는 것이 아닌가! 아버지한테 ID/PW 뭔지 기억나냐고 여쭤봤지만 당연히 잊어버린 상태였고, 그나마 과거 사용하던 ID/PW들을 모두 입력해 보았으나 일치하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히 아이디 찾기 기능이 있길래 눌러봤더니, 계좌번호와 계좌비밀번호, 주민번호 앞자리를 입력하란다. 그래서 입력했더니 이번에는 본인인증을 해야한단다. 그런데 이 본인인증 방법이 딱 2가지이다. 하나는 공인인증서로 인증, 하나는 SMS인증... 공인인증서로 인증이 될리 만무해, SMS 인증을 시도했으나 이마저도 실패했다. 아버지 휴대폰이 어머니 명의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이게 대체 뭐란말인가?



3.


물론 아버지가 IT나 이런 복잡한 절차에 익숙치 않아 은행 직원의 안내나 문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셨을 수 있다. 그리고 애초에 미리미리 준비하지 못한 내 잘못도 있다. 하지만 이런 복잡하면서도 친절하지 않은 시스템들에 정말 회의를 느낀다. 


본인 인증을 주민등록번호로 하라고 하다가 여러 곳에서 주민등록번호가 털리자 아이핀을 이용하라고 하고, 아이핀을 기껏 이용했더니 아이핀도 털리고, 남은건 휴대폰밖에 없는데 휴대폰은 또 본인명의 외 다른 가족 명의로 등록할 수 있게 해뒀고...


총체적 난국이라는 말 밖에 떠오르지 않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