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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반적인 상식을 토대로 얘기하는 ‘청년’과, 아들러의 심리학을 토대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 얘기하는 ‘철학자’의 얘기가 대화 형태로 풀어지는 구조로 되어있다. 솔직히 아들러의 심리학 내용 자체만 놓고 보면 너무 뻔하고 이상적인데, 이를 일반인 입장에서의 의문, 그리고 이에 대한 설득의 측면에서 풀어나갔기 때문에 설득력을 갖춘다. 중간중간 동의하기 힘든 내용도 있었지만, 전체적인 그림을 놓고 보았을 때 꽤 공감도 가고, 흔히 말하는 ‘유리멘탈’의 소유자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 같은 책이다. 물론 나는 꽤 강철멘탈(?)이기 때문에 그냥 공감 정도만 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책의 주요 내용과, 공감갔던 구절들을 하나씩 적어보도록 하겠다.
아들러의 심리학에서는 과거의 ‘원인’이 아니라 현재의 ‘목적’을 본다네... 아들러는 트라우마 이론을 부정하면서 이렇게 말했네. “어떠한 경험도 그 자체는 성공의 원인도 실패의 원인도 아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받은 충격 - 즉 트라우마 - 으로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경험 안에서 목적에 맞는 수단을 찾아낸다. 경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자신을 결정하는 것이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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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무엇이 주어졌느냐가 아니라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이다.” ... 그리스어로 선을 뜻하는 ‘아가톤(agathon)’이란 단어에는 도덕적 의미 외에도 ‘득이 된다’라는 의미도 있네. 반면 ‘악’을 뜻하는 ‘카콘(kakon)’이란 단어에는 ‘득이 되지 않는다’라는 의미가 있고. 이 세계에는 부정이나 범죄 등 각종 악행이 만연해 있지. 하지만 순수한 의미에서 ‘악’, 즉 ‘득이 되지 않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네.
프로이트, 융의 심리학과 가장 다른 부분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백프로 공감하진 못하겠다. 물론 개인의 경험, 환경을 극복하고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은 공감하지만, 이 내용에 따르면 마치 모든 책임은 자기 자신만의 것이라는 것이다. 트라우마를 극복해내고 나아가자는 희망적인 내용까지는 정말 공감하고 스스로도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단순히 모든 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기엔 세상에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일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그런 성격이나 기질을 ‘생활양식(life style)’이라는 말로 설명하네. ... 생활양식이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고 한다면 다시 선택하는 것도 가능할 테지. ... 생활양식을 바꾸려고 할 떄, 우리는 큰 ‘용기’가 있어야 하네. 변함으로써 생기는 ‘불안’을 선택할 것이냐, 변하지 않아서 따르는 ‘불만’을 선택할 것이냐.
인간은 끊임없이 변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는 내용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상당 부분 공감한다. 뭔가에 불만을 느꼈을 때 스스로가 바뀌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지만, 수많은 합리화를 통해 바뀌지 않는 결론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변함으로써 생기는 불안을 선택할 것이냐, 변하지 않아서 따르는 불만을 선택할 것이냐’라는 문장을 봤을 때는 엄청 뜨끔했다.
아들러는 열등감을 ‘민더베르티히카이트게퓔(Min-der-wertigkeitsgefuhl)’이라고 했네. 독일어로 ‘가치’가 ‘더 적은’ ‘느낌’이라는 뜻이지. 즉 열등감이란 자신에 대한 가치판단과 관련된 말이지. ... 우리를 괴롭히는 열등감은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주관적 해석’...
정말로 자신 있는 사람은 자랑하지 않아. 열등감이 심하니까 자랑하는 걸세.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을 일부러 과시하려고 하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주위에 누구 한 사람 ‘이런 나’를 인정해주지 않을까 겁이 나거든. 이는 완벽한 우월 콤플렉스라네.
자신의 불행을 ‘특별’하기 위한 무기로 휘두르는 한 그 사람은 영원히 불행을 필요로 할 수 밖에 없네. ... ‘우월성 추구’란 자신의 한 발 앞으로 내딛으려는 의지를 말하는 거지, 남보다 더 높은 곳으로 가려고 경쟁하려는 의사가 아닐세. ... 건전한 열등감이란 타인과 비교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이상적인 나’와 비교해서 생기는 것이라네.
이 내용도 상당 부분 공감한다. 우월감이나 자만심은 결국 열등감의 발현이고, 열등감은 자존감이 낮아서라고 생각한다. 자존감이 낮다는 것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모습을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어찌 보면 자존감이 낮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이것은 누구의 과제인가’를 생각하게. 그리고 과제를 분리하게. 어디까지가 내 과제이고, 어디서부터가 타인의 과제인가. 냉정하기 선을 긋는 걸세. 그리고 누구도 내 과제에 개입시키지 말고, 나도 타인의 과제에 개입하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구체적이고도 대인관계의 고민을 단숨에 해결할 수 있는 아들러 심리학만의 획기적인 점이라고 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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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고 다른 사람의 안색을 살피면서 사는 인생, 다른 사람이 소망을 이룰 수 있게 거들면서 사는 인생. 자네 말대로 이정표가 될지도 몰라. 하지만 너무 부자유스러운 삶 아닌가? 그러면 왜 그런 부자유스러운 삶을 택하는 것일까? 자네는 자꾸 인정욕구라고 하는데, 정확하게는 누구에게도 미움을 받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걸세. ...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지 않는다는 건 부자유수러운 동시에 불가능한 일일세. 자유를 행사하려면 대가가 뒤따르네. 자유를 얻으려면 타인에게 미움을 살 수밖에 없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과제만을 처리하는 것이 옳다는 것은 대부분 마음 속으로 알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를 그대로 수행하는 것은 너무 이상적인 지표가 아닌가 생각한다. 다만 내 모든 인생에서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인생은 힘들지만 자신의 꿈이나 직업, 취미 등을 선택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해야한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다른 사람을 믿을 때 조건을 일절 달지 않는 걸세. 비록 신용할 수 있을 만큼의 객관적 근거가 없더라도 믿는다, 담보가 있든 말든 개의치 않고 무조건 믿는다. 그것이 신뢰라네.
배신할지 말지는 내가 결정하는 문제가 아니므로, 나는 일단 신뢰를 하고 보라는 내용이다. 이 역시 완전히 동의하긴 힘들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나의 과제와 자신의 과제를 정말 완벽히 분리하기란, 특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는, 매우 힘들어 보인다. 과제를 분리해야하고, 이에 따라 주변 사람을 신뢰해야한다는 논리 자체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원래 공부든 운동이든 어느 정도 결과를 내려면 일정한 노력이 필요하네. 그런데 “특별히 못되게 굴어야지”하고 결심한 아이, 즉 문제 행동을 하는 아이는 그러한 건전한 노력은 외면한 채 주목만 받으려고 하지.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그를 일컬어 ‘안이한 우월성 추구’라고 하네.
위에서 말한 목적론과 관련된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의 경험/환경을 완전히 부정할 순 없지만, 어떤 원인에 대해 왜곡된 결론을 내리고 행동하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한계치까지 노력을 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결과를 내기 위한 것은 말 그대로 ‘안이한 우월성 추구’이다.
왜 ‘특별’해지려고 하는 걸까? 그건 ‘평범한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지. 그러니까 ‘특별히 잘하는’상태가 실패로 돌아가면 극단적으로, 특별히 못되게 구는 상태로 빠르게 넘어가는 걸세. 그런데 보통인 것, 평범한 것은 정말로 좋지 않은 걸까? 어딘가 열등하다는 뜻인가? 실은 누구나 평범하지 않나? 그 점을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네.
내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었다. 자신만의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은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왔던 것이지만, ‘평범한 자신을 받아들여라’라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내가 여러가지로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어하는 것 중 상당수는 특별해지기 위해서가 아닐까? 진정 나를 위한, 내 꿈을 위한 노력들과, 단순히 ‘특별해지기 위한’ 노력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자네가 말하는 목적지에 도달하려는 인생은 ‘키네시스적 인생’이라고 할 수 있네. 그에 반해 내가 말하는 춤을 추는 인생은 ‘에네르게이아적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 걸세.
* 키네시스란 아리스토렐레스의 ‘목적론적 운동’을 말한다. 어떠한 가능성이 있는 사물이 목적을 완전히 실현한 상태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정해진 목적을 향해 가는 운동이다.
* 에네르게이아란 현실태라고 하여 키네시스 중 목적의 완성보다는 실현해가는 활동에 초점을 마춘다. 다시 말해 실현이 되어가고 있는 상태, 과정의 상태에 있음을 뜻한다. 실행되고 있는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그 자체로 완전한 가치를 가진다.
결론에 가까운 내용인데, 너무 진부하긴 하지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인생은 어떤 결론이 있고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집합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 집합을 즐기는 것과, ‘합리화’를 통해 즐기는 것을 구분하기가 매우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미움받을 용기’ 내용 자체를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 아들러의 목적론에 의하면, 문제는 과거도 환경도 아닌 너 자신에게 있다.
- 인생은 타인과의 경쟁이 아니다.
- 나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하라.
- 주체적인 삶과 현재 살고 있는 순간이 중요하다.
아들러의 심리학은 어떤 종교를 설명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상당히 단호한 학문같다. 논리 자체에는 문제가 없지만, 그것을 실행하는 인간의 나약함을 생각하면 모든 것을 실천하긴 어려워 보인다. 다만 이런 이론의 실천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정말 이런 것들을 잘 지키며 살고 있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볼 수 있는 기회로 삼는 것 자체만으로도 책을 읽을 가치가 충분히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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