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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뷰는 이번 학기에 듣고 있는 '문학과 영상'이라는 수업의 과제로 작성한 리뷰로, 포스트 제목은 '박범신 - 은교' 이지만 실제로는 소설 은교와 영화 은교(정지영 감독)를 모두 보고 비교하여 작성한 글이다.
다른 매체의 작품이 영화로 각색된 작품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소설이 각색된 작품들은 물론 만화가 각색된 작품들도 꽤 많이 보았다. 그런데 볼 때마다 ‘각색된 영화는 원작을 먼저 보고 봤을 때 항상 재미 없다’고 느꼈다. 그저 영화의 런타임이 짧으니 어쩔 수 없나보다 했는데, 문학과 영상 수업에서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나의 잘못된 판단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각색’은 원작을 최대한 유사하게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원작을 참고로 하여 재창조 하는 것이었다.
은교의 경우 역시 소설을 먼저 보고 영화를 보았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계속 소설의 내용이 머릿 속에서 둥둥 떠다녔다. ‘이 부분은 생략이 됐네, 이 부분은 소설이랑 완전히 다르네, …’. 개인적으로는 소설의 많은 미묘한 부분들을 영화에서 다 담아내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각색은 원작의 모방이 아니라 ‘재창조’라는 측면에서, 소설과 영화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적어보며 각 장르가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추었는지에 대해 비교해보고자 한다.
우선 공통점을 다뤄보자면 소설과 영화 모두 이적요, 서지우, 은교 세 명의 관계가 주된 서사를 이룬다는 것이 뼈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두 매체 모두 단순히 삼각관계라고 표현하기엔 사랑 외적인 여러 요소들이 개입되어있다. 또한 은교를 향한 이적요의 순수하면서도 욕망적인 사랑, 그리고 나이 앞에서 절망하다가 제자에 대해 분노를 참지 못해 결국 살의를 가지게 되는 이적요의 모습, 그리고 몇몇 대사와 상황들이 소설과 영화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다.
차이점으로 첫번째는, 소설에서는 이적요와 서지우의 관계가 좀 더 심도있게 다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소설에서 이적요가 무한한 분노를 느끼지만 살의를 느낀 이후에도 마지막까지 서지우에게 눈빛을 보내는 장면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소설에서 서지우는 굉장히 입체적인 인물로, 많은 복합적인 감정들이 묘사된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이러한 서지우의 모습, 그리고 이적요와 서지우의 관계가 상대적으로 단순화되어 나온 것 같다.
두번째로 소설에서 한은교는 굉장히 순수하면서도 신비롭게 비춰지고 있어 의뭉스럽기까지 하지만, 영화에서는 은교의 마음이 좀 더 드러나있다. 그리고 이런 면이 오히려 여주인공을 더 수동적인 모습으로 보이게 한다. 소설에서는 은교의 내면을 거의 다루지 않았는데, 일부러 신비화 시킨다기보다는 사실 은교의 마음이나 행위에 대한 동기 보다는 이적요와 서지우의 내면, 관계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세번째로 ‘젊음과 늙음’에 대한 인식의 정도의 차이이다. 물론 영화에서도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이,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는 벌이 아니다’ 라고 하는 대사라든지, 서지우가 이적요를 노인이라고 몰아붙이는 장면 등이 나온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는 이적요가 은교를 사랑하는 것이 ‘여인’에 대한 사랑이라기보단 ‘젊음’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늙음에 대한 이적요의 내면들이 많이 묘사된다.
마지막으로 가장 크게 느낀 차이는 바로 ‘관음’이다. 소설에서는 이적요의 내면이 워낙 잘 드러나있다보니, 은교를 바라보는 모습이 관음으로 보이지 않았다. 비록 나이 차이를 보았을 때 정상인의 사랑의 범주를 벗어나긴 하지만, 마치 좋아하는 사람을 몰래 힐끗힐끗 쳐다보는 정도의 일반적인 사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이적요가 은교를 몰래 바라보고, 그리고 또 자신이 바라는 자신과 은교의 관계를 상상하고… 이런 모습들이 상당히 관음적으로 보여졌다. 심지어 서지우와 은교의 정사를 지켜보며 이적요는 굉장히 가슴아파하고 분노하지만, 그럼에도 계속 바라보는 모습은 관음의 절정을 보여주는 장면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소설과 영화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간략히 적어보았다. 다만 소설의 여운이 너무 많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영화를 봐서 그런지, 영화를 원작과 별개로 독립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너무 부족했던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원작 소설과 각색된 영화를 보며, 히치콕이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단편 소설만 각색했던 이유를 알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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