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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4.03 [책리뷰] 베른하르트 슐링크 - 더 리더(The Reader) 2
글
** 문학과 영상이라는 교양 수업의 과제로 작성한 리뷰로, 소설 더 리더와 영화 더 리더의 비교 감상문이다.
3년 전인가, <더리더>의 초반부 20분 정도를 보다가 끝까지 보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더리더> 초반부에는 꽤 파격적인 정사 장면이 나오는데, 그 부분만 보고는 단순히 격정 로맨스 영화인 줄 알았던 것이다. 영화 포스터의 이미지나 각종 포탈 사이트에 소개된 줄거리를 보았던 것이 이런 오해를 야기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영화 <더리더>와 소설 『더리더』를 보고, 왜 이런 작품을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나 싶었다.
‘더리더’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독일의 전후 세대 갈등과 이에 대한 해결의 과정을 특정 인물들을 통해 표현하는 작품’이다. 실제로 <더리더>와 『더리더』 모두 15세 소년 마이클과 30대 중반의 여성 한나의 사랑을 시작으로 해서, 한나의 영향을 받은 마이클의 인생, 한나의 재판, 재판 후 마이클과 한나의 관계 그리고 한나의 자살이 서사의 뼈대를 이룬다. 그러나 그 속에 담겨진 의미는 전혀 다른 것이라 할 수 있다. <더리더>와『더리더』에서 각각 표현하는 방식이나 세부적인 설정 등은 조금씩 다른 면이 있지만, 이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숨겨진 의도는 거의 동일한 것으로 보인다.
소설과 영화를 보며 공통적으로 느낀 주요 부분들을 언급해본다. 우선 마이클과 한나의 사랑은 이 작품의 서사를 이루고자 하는 장치일 뿐, 위에서 언급한 ‘전후 세대 갈등과 해결 과정’에 있어서는 중요한 요소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다만 어린 마이클이 바라보는 한나의 모습은, 전쟁 당시 ‘가해자’ 를 단순히 악으로 간주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든다. 도입부에서 마이클을 도와주는 모습이나 재판 과정에서 드러나는 한나의 선행(?) 그리고 순진함들은 가해자가 정말 순수 악은 아닐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리고 소설/영화의 마이클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독자/관객의 입장에서, 가해자가 내가 한 때 사랑했고 나에게 큰 영향을 준 사람이라는 사실은 객관적인 판단을 더욱 흐리게 한다.
재판 과정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한나가 ‘재판관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라고 묻는 장면이다. 그 질문은 한나가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는 것이라기보단 진짜 몰라서,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겠어서 하는 질문으로 보인다. 심지어는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깊이 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죄를 저지른 후 ‘몰라서 그랬어요’ 라고 하는 것을 합리화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당연히 잘못된 것이지만, 한나가 지금까지 보여줬던 모습들이 이에 대한 판단을 단호하지 못하게 한다. 글을 읽지 못하는 문맹이며, 이를 극복하려 노력하기보단 숨기기에 급급하고, 이의 영향인지 다소 합리적이지 못한 사고를 하는 한나의 모습들이 바로 그것이다.
재판 이후 마이클이 한나를 찾아갔을 때 한나의 말, ‘내 느낌은 중요하지 않아. 내 생각이 어떤지도 중요하지 않아.’도 꽤나 인상적이다. 이는 지금까지 마이클의 시각에서, 즉 좀 더 가해자의 입장에 치우친 시각에서 가해자의 죄를 단호히 판단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반론이라고 생각된다.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가해자가 무지하건 말건 결국 피해자가 받은 피해와 충격에 대해서 가해자가 죗값을 치뤄야 한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인 것이다. 지금까지 ‘문맹’을 통해 가해자의 무지를 강조했다면, 이 말은 글을 배운 한나가 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지를 벗어난’ 상태의 가해자의 생각이다. 한편 이를 뒤집어 생각하면, 당시에는 무지로 인해 죄를 저지른 가해자도, 무지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판단하고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일종의 면죄부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는 소설과 영화에서 조금씩 다르게 표현됐거나, 한 장르에서만 표현된 것들 중 ‘숨겨진 의도’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정리해본다. 『더리더』에서 마이클이 재판 과정에서 이렇게 생각하는 구절이 있다. ‘몇 주 동안 계속된 재판 내내 나는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나의 감각은 마비된 것 같았다. …(중략)… 잠시 후 나는 나와 비슷한 마비 증세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는 전쟁의 직접적인 영향권에서 벗어난, 그리고 벗어나고 있는 사람들의 무관심함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 무관심이란 ‘무지’에 대한 것이 아니라, 당시의 가해자(악)와 피해자의 아픔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무관심이다. 한나의 세대가 전쟁을 직접 겪은 1세대라면, 마이클의 세대는 이의 영향권에 살짝만 걸쳐있는 2세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2세대들의 무관심을 이런 감정 묘사를 통해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더리더』에서는 한나가 떠나기 직전 마이클이 수영장에서 한나를 외면하고, 본인은 이를 ‘배반’이라고 생각하며 죄책감을 가진다. 그리고 재판 과정에서 많은 번뇌를 하며 ‘범죄자를 배반하는 것이 죄가 되지 않으므로 내가 유죄가 아니라고 해도, 나는 범죄자를 사랑한 까닭에 유죄였다’라고 한다. 그리고 마이클은 본인의 아버지에게 찾아가 조언을 구하는데, 아버지가 이런 말을 한다. ‘하지만 어른들의 경우에는 내가 그들에게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들 스스로가 좋다고 여기는 것보다 우위에 두려고 하면 절대 안 돼.’ 이렇듯『더리더』에는 철학적인 물음들이나 명제들이 자주 나온다. 반면 <더리더>는『더리더』에 나온 철학적인 이슈들을 인물들의 표정이나 행동을 통해서 드러낸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논리적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문제를 받아들이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부분을 영화가 잘 살렸다고 본다. 대중에게 이런 민감하면서 어려운 문제를 던져주는데 있어 너무 논리적으로, 철학적으로 다가가기보다는 감정적으로, 직관적으로 와닿게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도『더리더』의 해당 부분을 보며 생각의 갈피를 잡지 못했는데, <더리더>를 보고 나서는 조금 더 명확한 감정을 갖게 되었다.
마지막으로『더리더』와 <더리더>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마이클의 ‘딸’의 역할과 각 장르에서 서사의 마무리이다. 『더리더』에서는 마이클이 글을 집필함으로써, <더리더>에서는 마이클이 자신의 딸에게 과거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을 암시함으로써 마무리된다. 이 두 가지의 방식이 분량 상으로는 상당히 짧지만, 시사하는 바는 꽤 크다. 『더리더』에서 마이클이 글을 집필하는 것은 과거를 차곡차곡 정리한다는 의미가 강하고, <더리더>에서 마이클이 딸에게 과거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은 다음 세대에게 이를 이어준다는 의미가 강한 것이다. 사실 전쟁 당시 가해자들의 죗값을 묻는 것과,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 모두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이다. 마이클이 수용소(정확히 말하면 죽음의 행군 중 묵게 된 교회)에 갇혀있다가 탈출한 모녀 중 딸을 만나는 장면에서 이런 면이 여실히 들어난다. 이런 상황 속에서 과거 일들을 곱씹으며 글을 집필하는 것은, 무감각해진 사람들이 다시금 이런 이슈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설득하는 것 같다. 반면 딸에게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이 과거를 털어놓는 것은, 다음 세대에게도 이러한 과제를 넘겨주는 동시에, 다음 세대와의 갈등을 해소하는 듯한 모습으로 보인다.
여기서 이 딸의 역할이 소설과 영화에서 각각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더리더』에서도 물론 딸의 권리를 빼앗는 것 같아 미안해하는 마이클의 내면이 표현되지만, <더리더>에서는 실제 딸과 소통하려 노력하지만 과거의 짐 때문에 완전히 소통되지 않는 느낌을 자아낸다. 그러나 마이클의 개인적인 과거사 청산, 즉 마음의 정리가 어느 정도 됨으로써 다음 세대와의 화해를 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더리더』와 <더리더>에서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느낌과, 각 장르에서 다르게 표현된 부분들 중 특정 의도와 관련된 부분들을 살펴보았다. 이런 점들을 보았을 때, ‘전후 세대 갈등과 죄의 처벌’ 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측면에서, <더리더>가 좀 더 직관적이면서도 미래 지향적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더리더』에서만 느끼고 고민할 수 있는 철학적인 이슈들이 있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더 많은 대중에게 더 직관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더리더>를『더리더』보다 더 높게 평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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