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읽은 책은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이다. 방금 막 책을 다 읽은 참인데, 가슴에 먹먹함이 남아있다. 책의 내용을 다 읽고 뒤의 작가의 말을 읽고나니 먹먹함이 더하다. 소설 속에 수많은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지만, 이 책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부분이 작가의 말에 있는 것 같아 인용해본다.


우리는 최선의 . 적어도 그렇다고 판단한 . 선택으로 질풍을 피하거나 질풍에 맞서려 한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최선을 두고 최악의 패를 잡는 이해 못 할 상황도 빈번하게 벌어진다(일간지 사회면을 점령하고 있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그 증거일 것이다).


사실과 진실 사이에는 바로 이 '그러나'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야기되지 않은, 혹은 이야기할 수 없는 '어떤 세계'. 불편하고 혼란스럽지만 우리가 한사코 들여다봐야 하는 세계이기도 하다. 왜 그래야 하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모두 '그러나'를 피해갈 수 없는 존재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겠다.


- 정유정, 7년의 밤, 작가의 말 중 -


책을 읽기 시작한 초반에는 - 극중 소설의 내용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 책이 참 지루했다. 전체적으로 우울한 분위기였고, 작은 장면에도 묘사가 많이 들어가있어 템포도 느리며, 무엇보다 뻔하디 뻔한 스토리(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도입부에 지나지 않았던 사건)가 나왔다.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 그냥저냥 재밌는 레벨을 넘어선, 독자를 압도할만큼 재미있는 소설의 도입부는 흥미롭게 꾸미기 힘든 것 같다. K팝스타에서 박진영이 자주 하는 말이 있는데, 무대에서 강약조절을 하며 극적인 무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설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소설이라면 이를 풀어내기 시작하는 전반부는 다소 지루한 면이 있는 것 같다.


아무튼, '7년의 밤'에는 아버지이자 살인자인 현수, 현수가 끔직히 아끼는 아들인 서원, 현수의 직장 동료이자 서원의 보호자인 승환, 이들을 지옥까지 몰아붙이는 엘리트이자 사이코패스인 영제가 주요 인물들로 나온다. 그리고 작가의 말에 언급됐듯이, '그러나'를 피해가지 못해 일어나는 사건이 소설의 주 내용이다.


이 사건은 어두운 과거를 가진 현수의 부정, 무서울 정도로 치밀한 영제, 침착하게 지켜보면서도 사건의 끝을 알고 싶어하는 소설가 승환, 그리고 나이에 맞지 않는 성숙함을 보여주는 서원 모두가 어우러져 그 극적임을 더한다. 소설의 주인공과 보조인물들 하나하나 사건에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다.


내용을 더 언급하는 것은 스포가 될 것 같아 여기서 마친다. 읽으며 이렇게 감정 이입을 하고, 다 읽고나서도 그 감정을 잠시나마 그대로 간직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소설이라는 장르의 큰 매력인 것 같다. 한국 소설은 그닥 많이 읽지 않았었는데 앞으로 많이 찾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었다.




7년의 밤

저자
정유정 지음
출판사
은행나무 | 2011-04-06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세계문학상 수상 작가 정유정의 신작 장편.7년의 밤 동안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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